
책 만들기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책에 사진이 47장 들어갑니다. 그중 41장이 세로 사진이에요. 요즘 누가 폰을 눕혀서 찍나요...
사진 넣는 건 쉽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크게, 그리고 어디에 넣느냐지요.
사진을 얼마나 크게 넣어야 하나
1편에서 숙제를 하나 남겼지요. 종이책 8MB, 전자책 31MB. 해상도를 챙긴 건 종이책인데 왜 종이책이 더 가벼운가.
저도 이상해서 사진 한 장이 실제로 몇 픽셀인지 재봤습니다.
| 사진 한 장 가로 | 종이책 | 전자책 |
|---|---|---|
| 픽셀 수 | 803px | 1,200px |
정반대였습니다. 전자책 사진이 종이책보다 1.5배 큽니다.
알고 나니 당연했습니다. 종이 위에서는 사진이 물리적으로 작기 때문입니다. 본문 옆에 띄우는 세로 사진이 49.9mm, 가운데 큼직하게 넣는 가로 사진이 95.8mm예요. 68mm짜리를 300dpi로 채우는 데 필요한 픽셀이 803개뿐입니다. 그 이상 넣어봐야 인쇄기가 버립니다.
전자책은 반대로 화면 크기를 모릅니다. 아이패드에서 전체 화면으로 볼지 폰에서 볼지 알 수가 없으니 넉넉하게 담아둘 수밖에요.
그러니까 300dpi라는 기준은 "크게"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앉힐 자리가 작으면 필요한 픽셀도 같이 작아집니다. 저는 이걸 다 만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전자책이 무거운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뜯어보니 이렇더군요.
| 전자책 32.9MB | 용량 | 비중 |
|---|---|---|
| 사진 | 24.1MB | 73% |
| 폰트 | 8.7MB | 27% |
| 본문 글자 | 0.1MB | 0.2% |
폰트가 8.7MB입니다. 한글은 글자가 11,172자라 폰트 파일이 큽니다. 게다가 전자책은 어느 기기에서 열릴지 모르니 폰트를 통째로 품고 다녀야 해요. 종이책은 인쇄소가 찍어내면 끝이라 실제로 쓴 글자만 남기고 버립니다.
그리고 정작 본문 28,206자는 0.1MB입니다. 아내가 20주 동안 쓴 글이 파일 크기로는 0.2%예요. 글자는 거의 무게가 없습니다. 책의 무게는 사진과 폰트가 다 지고 있었습니다.
빈 페이지가 31개 나왔습니다
처음엔 단순하게 갔습니다. 원고에 사진이 있는 자리마다 페이지 폭에 맞춰 큼직하게 앉혔어요. 큼직해야 잘 보이지요.
뽑아보니 거의 비어 있는 페이지가 31개 나왔습니다. 서른한 개요.
계산해보고 알았습니다. 세로 사진을 판면 폭에 꽉 채우면 사진 한 장이 본문 높이의 77%를 먹어요. 남은 자리에 문단 하나가 안 들어가니 그대로 다음 장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니 사진 한 장, 글 두 줄, 다시 사진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읽던 흐름이 뚝뚝 끊깁니다. 큼직하게 넣은 게 화근이었지요.

또 전작을 열어봤습니다
이럴 때마다 전작을 엽니다. 첫 책은 세로 사진을 절반 폭으로 줄여 본문 옆에 띄우고, 글이 사진 옆을 감싸며 흐르게 해뒀더군요. 가로 사진만 가운데 큼직하게 넣고요.
띄우는 방향도 왼쪽 26장, 오른쪽 22장으로 섞여 있었습니다. 한쪽으로 몰면 페이지가 기울어 보이거든요. 이런 건 그냥 알 수가 없습니다. 세어봐야 압니다.
이 방식으로 바꾸니 빈 페이지가 싹 사라졌습니다. 세로 사진 49.9mm, 가로 사진 95.8mm.
이번엔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빈 페이지는 없앴는데 아내가 바로 다음 걸 짚더군요. 사진 두세 장이 한 페이지에 몰려 붙는 곳이 있다고요. "조화롭지 않아 보인다"는 말에 다시 코드를 켰습니다.
원고에서 사진이 가까이 있으면 그대로 붙어버리는 게 원인이었어요. 그래서 사진과 사진 사이에 본문이 최소 520자는 들어가야 한다는 규칙을 넣었습니다. 한 페이지가 대략 750자니까, 최소 3분의 2쪽은 글이 이어진다는 뜻이지요.
챕터 첫 사진에도 규칙을 뒀습니다. 제목 바로 밑에 사진이 붙으면 챕터 시작이 볼품없어지거든요. 앞에 본문이 400자는 지나가도록 했습니다.
결국 자동화했습니다
사진 배치는 규칙만으로는 안 되더군요. 그래서 PDF를 만든 뒤 스스로 다시 읽어 판면을 넘쳤는지 검사하고, 문제가 있으면 사진 위치를 조정해 다시 만드는 과정을 넣었습니다. 결함 0건 될 때까지 돕니다. 사람이 눈으로 볼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수십 번 다시 뽑았습니다
1편에서 이 책을 수십 번 다시 뽑았다고 했는데, 대부분이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사진 자리를 조금만 건드려도 그 뒤가 전부 밀립니다. 47장 중 한 장을 옮기면 그 아래 문단이 다음 쪽으로 넘어가고, 그러면 다음 사진이 앉을 자리가 사라지고, 또 밀리고... 결국 통째로 다시 뽑아서 처음부터 눈으로 봐야 합니다.
한 번 뽑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뽑아봐야 안다는 거예요. 코드만 봐서는 빈 페이지가 생길지 사진이 몰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사람이 눈으로 보던 일을 프로그램에 넘겼습니다. PDF를 만들고 나서 그걸 다시 읽어, 사진이 판면을 넘쳤는지 빈 공간이 과한지 검사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사진 위치를 조금 옮겨 다시 만들고, 또 검사하고요. 결함 0건이 될 때까지 이 짓을 반복합니다.
제가 밤새 할 일을 기계가 몇 초에 합니다. 애초에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어요.
아내의 검수 열 가지
초안 나온 뒤 아내가 검수해줬습니다. 지적이 열 가지였는데 절반이 사진 위치였어요.
"28페이지 우리 가족도 조금씩 변해 있었다 뒤로 지하철 티켓 사진 배치."
"33페이지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뒤에 인형 탈 사진 배치."
"87페이지 닭꼬치 사진을 89페이지 바다포도 사진과 바꾸기."
쓴 사람만 아는 자리들입니다. 저는 알고리즘으로 고르게 뿌리는 게 좋은 줄 알았는데, 글의 호흡을 아는 사람이 짚어주니 확실히 달라지더군요. 기계가 못 하는 게 있습니다.
검수는 아이들 방학 때였습니다. 둘째가 요즘 로블록스로 게임을 만들고 제페토 모델링으로 이미지를 파는 소소한 알바를 하는 중이라, 아내 피씨를 독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내는 아이패드로, 저는 전자책으로 읽으면서 검수했습니다.
뜻밖에 이게 도움이 됐습니다. 종이책 PDF를 쪽 단위로 넘겨보는 것과 달리, 스크롤하며 읽으니 책의 흐름이 더 잘 보이더군요. 어디서 숨이 막히고 어디서 늘어지는지가 손끝으로 느껴집니다.
"89페이지 바다포도 사진"
처음에 아내는 이런 식으로 요청했습니다. "89페이지 바다포도 부분에 바다포도 사진 넣어줘."
얼마나 난감한 요청인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우선 전자책에는 페이지가 없습니다. 아내는 아이패드로 읽고 있었으니 그 화면의 97쪽이지, 제 화면에서는 다른 자리예요. 종이책 97쪽과도 다르고요.
그리고 "바다포도 사진"이라고만 하면 저는 그게 어느 파일인지 모릅니다. 파일명은 죄다 IMG_0521 같은 것들이거든요. 그때마다 사진 수십 장을 하나씩 열어보며 어느 게 바다포도인지 찾아내야 했습니다.
사진 판독을 AI에게 시켜봤는데 이것도 한계가 있더군요. 비슷한 음식 사진이 여러 장이면 헷갈립니다. 나중에는 AI가 자기는 도저히 못 하겠다며 저한테 사진이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하더군요. 시키려고 부른 쪽이 검수를 하고 앉아 있는 겁니다.
이래서 요령이 생겼습니다. 첫째, 파일명에 뜻을 담습니다. IMG_0521 대신 바다포도.jpg 로 바꿔두면 찾을 일이 없어집니다.
둘째, 쪽수가 아니라 문구로 짚습니다. "89페이지" 대신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뒤에" 라고 하면 오해가 없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제가 어떤 문구 뒤에 어떤 사진을 강제로 박아 넣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알고리즘이 알아서 예쁘게 놓아주길 기대하는 걸 포기한 거지요.
정말 질리도록 재작업을 했습니다.
결국 규칙이 된 것
그 재작업을 몇 번 겪고 나서야 규칙 하나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내가 알려준 자리를 "28페이지"가 아니라 "이 문장 뒤"로 저장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쪽 번호로 받아 적다가 몇 번을 갈아엎고 나서야 여기까지 왔습니다.
쪽 번호로 저장하면 문단 조금만 고쳐도 전부 어긋납니다. 반면 "우리 가족도 조금씩 변해 있었다.로 끝나는 문단 뒤"로 적어두면, 책이 아무리 다시 흘러도 사진은 그 문장을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이 규칙이 나중에 제 목을 살렸습니다. 뒤에 판면 폭을 고치느라 본문 전체를 다시 흘렸는데, 사진 47장이 한 장도 안 움직였어요. 문서 흐름 506개 항목을 전부 대조해서 확인했습니다. 쪽 번호로 저장했더라면 아내에게 검수를 처음부터 다시 부탁했어야 했겠지요. 그건 좀...
다음에 책을 낸다면
이 고생을 하고 나서 든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사진은 처음부터 글쓴이가 원고에 직접 넣어두는 게 좋습니다.
보통은 글을 다 쓰고 나중에 사진을 붙입니다. 저희도 그랬고요. 그런데 그러면 "이 사진이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과 실제로 넣는 사람이 갈립니다. 그 사이를 메우느라 몇 번을 주고받은 겁니다.
글을 쓰면서 "여기쯤 그 사진" 하고 바로 끼워두면, 나중에 사진을 찾을 일도 없고 자리를 설명할 일도 없습니다. 원고 자체가 이미 답을 갖고 있으니까요.
다음 책은 그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다음 편은 책이 통째로 사라진 날입니다. 만들어둔 전자책을 열었더니 20화가 전부 비어 있었습니다. 전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