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만들기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파일이 다 됐으면 이제 서점에 올려야지요.
저희는 전자책은 작가와, 종이책은 교보문고 퍼플로 나눠서 냈습니다.
왜 두 곳으로 나누나
전자책 - 작가와. 한 곳에 등록하면 교보, 알라딘, 예스24, 리디 같은 여러 플랫폼에 알아서 배포해 줍니다. 서점마다 따로 등록하는 수고를 덜 수 있어요. 게으른 사람에게 딱입니다.
종이책 - 교보 퍼플. POD, 그러니까 주문형 출판입니다. 미리 찍어두지 않고 주문이 들어올 때 한 권씩 인쇄해요. 재고도 창고도 필요 없습니다. 대신 몇 쇄 같은 구분이 없어서, 한 번 등록하면 그게 계속 그대로 찍힙니다. 이게 은근히 무서운 얘기지요.
같은 책인데 준비물이 다릅니다
두 곳에 내면서 제일 헷갈렸던 게 이겁니다. 같은 책인데 요구하는 게 꽤 다르더군요.
판권 양식이 다릅니다. 책 맨 뒤에 들어가는 발행 정보 말입니다. 두 곳이 각자 양식을 뿌려요. 작가와는 출판일, 저자명, 출판사, ISBN, 판매가 순인데, 퍼플은 ISBN 칸이 아예 없고 대신 출판등록번호와 주소, 대표전화가 들어갑니다. 마지막 저작권 문구도 서로 다르고요.
표지 이미지 규격도 다릅니다. 두 곳 다 서점 페이지에 쓸 표지 이미지를 따로 올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가와는 자기네 로고를 넣으라 하고, 교보는 퍼플 로고를 넣으라 해요. 게다가 교보는 가로 1,500픽셀을 넘으면 안 됩니다. 결국 같은 디자인으로 두 벌 만들었습니다.
ISBN은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제가 직접 받아야 하는 줄 알고 한참 알아봤는데, 두 곳이 각자 발급해서 직접 넣어줍니다. 교보는 승인 후 7영업일 안에 발급해서 표지 바코드와 판권 정보까지 추가하고, 90일 뒤 국립중앙도서관 납본까지 대신 해줘요. 그러니 판권에 ISBN을 미리 넣으면 안 됩니다. 칸만 비워두세요.
값은 얼마로 정할 것인가
종이책 9,900원, 전자책 7,900원으로 정했습니다.
퍼플에 사양을 넣으면 예상 정가가 나옵니다. 105쪽 컬러에 9,700원이었어요. 이건 원가가 아니라 설정할 수 있는 최저가입니다. 그 위로 100원 단위로 정하면 됩니다.
수익 구조가 궁금해서 전작 정산 내역을 넘기고 거꾸로 계산해보라고 했습니다. 첫 책이 49권 팔려 145,040원 정산됐는데, 권당 2,960원. 정가 14,800원의 정확히 20%랍니다. 딱 떨어지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러니까 정가를 올리면 권당 수익은 늘어납니다. 다만 저희처럼 본인이 제일 많이 사는 책은 본인 부담도 같이 늘어요. 1,000원 올려서 권당 200원 더 벌자고 스무 권 살 때 2만 원을 더 내는 셈입니다. 계산기를 두들겨보고 낮게 잡았습니다.
전작은 14,800원이었습니다. 쪽수가 많아서 원가부터 높았거든요. 마진은 거의 안 붙였습니다. 어차피 많이 팔릴 책도 아닌데 그걸로 고민할 이유가 없다고 봤어요.
14,800원으로 정한 데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습니다. 15,000원이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봤거든요. 만 오천 원 넘어가면 손이 멈칫한다고요.
그렇게 책을 내놓고 나서 알았습니다. 아뿔싸.
15,000원부터 무료배송이더군요.
배송료가 2,500원입니다. 그러니까 독자는 14,800원짜리 책을 17,300원에 사는 겁니다. 200원 아끼려다 2,500원을 얹은 셈이지요.
그냥 15,000원으로 했다면 저는 200원 더 벌고 독자는 2,300원을 아꼈습니다. 양쪽 다 이득인 자리를 제 발로 걷어찬 거예요.
결국 전작은 다른 책 살 때 같이 담아야 하는 책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책만 사자니 배송비가 아깝고, 그렇다고 15,000원을 채우자니 뭔가를 더 골라야 하고요.
그리고 1년치 판매 내역을 열어봤습니다. 대부분 저희 부부가 선물하려고 산 것이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최저가 9,700원에 100원만 붙여서 9,900원입니다. 남기려는 값이 아니라 나눠주기 편한 값으로요.
전자책은 오히려 쉬웠습니다. 여기는 원가라는 게 없고 판매가의 몇 퍼센트를 출판사가 가져가는 구조라서요. 종이책 대비 몇 퍼센트가 업계에서 통용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7,900원으로 정했습니다.
승인 나면 못 바꾸는 것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퍼플은 최초 승인이 나면 영영 못 바꾸는 것과 90일간 바꿀 수 있는 것이 나뉩니다.
영영 못 바꿈 - 컬러 여부, 표지와 내지 종이, 코팅 방식, 제본 방식, 판매가.
90일간 교체 가능 - 본문 PDF, 표지 PDF.
그래서 종이 고르기랑 가격 정하기에 시간을 제일 많이 썼습니다. 특히 컬러 설정은 조심하세요. 사진 47장 들어간 책인데 내지가 흑백으로 잡히면... 그건 다른 책이지요. 되돌릴 방법도 없고요.
반대로 오탈자나 조판 문제는 90일 안에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승인 나면 바로 한 권 주문해보시길 권합니다. 화면으로는 절대 안 보이는 게 실물에서 보입니다.
원고 수정은 세 번뿐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걸 실제로 겪었습니다.
4편에 적은 그 사고입니다. 조판 검사기가 멈춰 있는 줄 모르고 "결함 0건"만 믿었다가, 사진 세 장이 재단선을 넘어간 채로 교보에 올렸습니다. 승인까지 났고요.
발견한 건 그 뒤였습니다. 그래서 원고 수정을 신청했습니다.
여기서 알게 된 게 있습니다. 원고 수정은 최대 세 번까지만 됩니다. 무제한이 아니에요. 그리고 더 뼈아픈 건 이겁니다.
수정을 신청하면 승인이 날 때까지 책이 품절 상태가 됩니다.
파는 책이 아니라 살 수 없는 책이 되는 거지요. 심사에 며칠이 걸리니 그동안은 아무도 못 삽니다. 저희처럼 선물하려고 사는 책이라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기회 세 번은 넉넉한 게 아닙니다. 한 번 쓸 때마다 책이 며칠씩 내려가니까요. 저는 그중 하나를 검사기를 믿었다가 썼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검수를 안 했습니다. 그 전까지 아내와 제가 이미 너무 여러 번 봤거든요. 문단 나누고, 사진 옮기고, 다시 뽑고, 또 보고. 둘 다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됐겠지 하고 넘긴 겁니다.
지쳐서 넘긴 그 한 번이 기회 하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안 끝납니다.
사진이 재단선을 넘은 걸 고쳐서 다시 올렸더니 반려되었습니다. 사유가 뜻밖이었어요. 사진이 아니라 쪽수였습니다.
[페이지 수 변동 불가]
판매승인 이후 원고 페이지 수 변동이 어렵습니다.
본 원고 페이지 수는 105P 입니다. 교체 신청해주신 원고 페이지 수는 104P입니다.
본 원고 페이지에 맞춰 105p로 다시 교체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위치를 고치니 그 뒤가 다시 흐르면서 105쪽이 104쪽이 된 겁니다. 한 쪽 줄어든 걸 저는 대수롭지 않게 봤어요. 한 쪽쯤 어긋나도 넘어가 주겠거니 했지요.
안 되더군요. 판매승인이 난 뒤에는 쪽수가 고정입니다. 이미 그 쪽수로 상품이 등록돼 있으니까요.
그래서 맨 뒤에 백면 한 장을 붙여 105쪽으로 되돌렸습니다. 다시 뽑으면 사진이 또 움직일 수 있으니 본문은 손대지 않고 PDF에 빈 쪽만 얹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진이 잘리는 걸 고치려다 쪽수가 바뀌고, 쪽수 때문에 반려되고, 그걸 맞추려고 빈 종이 한 장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기회는 또 하나 줄었고요.
세 번이 넉넉하다고 느끼신다면, 아직 안 겪어보신 겁니다.
걸려 넘어진 작은 것들
마지막으로 실제로 걸렸던 것들입니다. 사소한데 사람 피곤하게 하는 것들이지요.
낫표를 쓰면 반려됩니다. 책 소개에 전작 제목을 『시드니, 한 달의 온기』라고 적었다가 알았습니다. 등록 입력칸에서는 작은따옴표를 씁니다.
서점 등록 제목에서는 물음표를 뺐습니다. 저희 책 제목이 여보, 애들이 도쿄면 간다하네?인데, 물음표가 검색에서 문제가 된다더군요. 표지랑 판권엔 그대로 두고 등록 제목에서만 뺐습니다.
PDF 속성에 엉뚱한 이름이 박혀 있었습니다. 파이썬으로 워드 파일을 만들면 저자가 기본값으로 채워집니다. 한번 훑어보라고 했더니 저자가 "python-docx"로 되어 있다더군요. 독자가 PDF 정보창 열면 보이는 값입니다. 하마터면 python-docx 작가님의 책이 나올 뻔했습니다.
여섯 편을 마치며
아내가 쓴 글을 책으로 만드는 데 참 많은 걸 배웠습니다. 대부분은 전작을 자로 재고, 틀리고, 다시 재는 과정이었지요.
그리고 며칠 전, 완성된 책이 도착했습니다.

제일 먼저 만져본 건 종이였습니다. 전작보다 질감이 좋았습니다. 손에 쥐는 느낌은 시드니 책과 비슷한데 종이가 한 단계 나아진 인상이었어요. 뒷장의 글자도 또렷하게 잘 나왔습니다. 얇은 책이라 비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습니다.
그리고 화면에서는 끝내 안 보이던 게 하나 보였습니다. 표지 사진의 좌우 폭이 전작과 달랐습니다.
전작 시드니, 한 달의 온기는 표지 사진이 종이 끝까지 꽉 찹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양옆에 흰 여백이 5퍼센트씩 남았어요. 사진 폭이 표지 폭의 90퍼센트밖에 안 되는 겁니다.
모니터로는 몰랐습니다. 화면에서는 한 권씩 따로 보니까요. 두 권을 나란히 놓고 나서야 보이더군요. 조판 규격은 그렇게 자로 재놓고, 정작 표지는 재보지 않았던 겁니다.


위에서 승인 나면 바로 한 권 주문해보시라고 적었지요. 그 말을 쓴 사람이 그 말로 한 번 더 배웠습니다.
뒤표지에는 이번에도 스티커가 하나 붙어서 왔습니다. 전작 때도 그랬으니 예외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나오는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이게 ISBN 바코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번호를 보니 1400001172536, 14로 시작합니다. ISBN은 978이나 979로 시작하니 이건 ISBN이 아니라 교보 상품코드입니다. 스티커에 "스티커 제거 가능"이라고 적혀 있고 정가가 큼직하게 박혀 있으니 성격은 가격표에 가깝고요.
그런데 여기서 좀 이상합니다. 표지에는 ISBN도 정가도 이미 인쇄되어 있습니다. 교보가 승인 후에 발급해서 넣어준 그것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있는 정보 위에 같은 내용을 한 번 더 붙인 셈이에요.
왜 그러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매장 계산대가 자기네 상품코드로 책을 잡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입니다. 다만 전작에도 붙어 있었으니 이번만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니 표지를 디자인하실 때 뒤표지 아래쪽에 스티커가 한 장 붙는다는 걸 감안하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거기에 밤거리 사진을 꽉 채워 넣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위에 흰 딱지가 얹혔습니다. 중요한 문구나 얼굴을 그 자리에 두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
아이들 반응이 재미있었습니다.
첫째는 "와, 책이다" 했습니다. 둘째는 받아 들더니 이러더군요. "이 책은 얇네? 한 시간이면 다 읽겠다. 빨리 읽어야지."
얇다는 말이 칭찬으로 들린 건 처음이었습니다.
아내는 책을 받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나의 또 한 여행이 책으로 나왔구나.
뿌듯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한마디가 이 여섯 편의 답 같았습니다. 전작을 자로 재고, 사진 마흔일곱 장 자리를 잡고, 사라진 원고를 되살리고, 쪽수를 맞추려 빈 종이 한 장을 끼워 넣던 시간이 결국 저 문장 하나를 위한 것이었구나 싶었습니다.
다음 여행이 또 한 권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때는 앞장 이미지 폭부터 실물로 확인하겠습니다.


